
우진이가 영화를 보자며 예매까지 해서 함께 보았다. 퇴근하고 여의도에서 신촌까지 퇴근시간 막히는 걸 감수하면서 선택한 '필름 포럼'에서 윤가은 감독의 <세계의 주인>.
윤가은 감독의 <우리들>을 보고 크게 감동 받았기에 감독 이름은 익숙했다. 아무런 정보 없이 본 영화여서 첫 장면, 교복 입은 학생들의 키스 신은 아들과 맨 앞자리에서 보기에 조금...그랬지만, 그래도 많이 어색해 하지 않으면서 봐주었다. 어떤 의미가 있겠지 기대하면서.
이주인 역 서수빈 배우는 첫 작품인 것 같은데 연기를 참 잘한다. 천역덕스럽다. 엄마와 딸, 남동생으로 이뤄진 가족과 그 엄마가 운영하는 어린이집에 여동생을 맡기는 같은 반 수호와 아버지의 가족 구성원에 집중하며 보았다. 딱히 가족 구성원으로 이야기를 끌고 가지는 않았지만 드러나지 않은 수호네 가족사도 사연이 있을 법하다.
주인이의 아픈 이야기를 알게 된 여자 친구들의 반응, 현실이다. 어린이집 교사의 편견도.
얼마 전, 책꽂이 있던 그림책 <가족 앨범>을 버렸다. 아이들에게 목소리 높여 읽어주며 설명했던 책인데, 이제는 자신이 없다. 집을 떠나 살고 있는 주인이 아버지를 보면서 그 책이 떠올랐고, 주인이 많은 남자 아이들과 사귀고 싶어하면서도 키스 외 스킨십에 화들짝 놀라는 장면에서는 이금이 작가의 <유진과 유진>이 생각났다. 주인이만이 겪은 일이 아니다. 피해자는 참으로 많다. 그런데도 감독은 피해자들이 아무렇지도 않게 피해 이야기를 하게 하는 장면이 좋았다. 그래서 영화가 밝다. 너무 밝아서 더 아팠던 영화가 모녀의 세차장 장면에서 함께 울분을 터뜨린다. 최고의 장면이다. 그 장면을 좀 더 길게 보고 싶었다. 밝게 영화를 본 게 미안해서.
우진이는 봉사모임 사람들이 아무렇지도 않게 피해 얘기를 말하는 신이 가장 좋았다고 한다. 마술을 좋아하는 주인이 동생 해인이가 교도소에서 누나에게 오는 편지들을 감추며 그가 사라져버렸으면 좋겠다고 답장을 쓰다 만 것과 사라지게 하는 마술이 연결되면서 어린아이가 스스로 커버리는구나 안타까웠다. 술을 좋아하지 않던 엄마는 어느새 알콜 중독자가 돼 버렸고, 엄마 병원에 달려온 주인이 손에는 하천 쓰레기를 모으던 쓰레기 봉지가 들려있는 등 촘촘한 구성이 잔잔한 감동을 더해주었다.
세계의 주인. 피해자 모두 세상의 주인이다. 그러나 술 중독자가 돼 버린 엄마는 더이상 酒人이 아니길 바란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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